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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의 세계사

제 1차 세계대전의 개요와 세계사적 포인트

제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4년 3개월 계속된 인류 최초의 세계전쟁이다.

제국주의 국가가 독일·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동맹국과 영국·프랑스·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협상국의 2진영으로 나뉘어 유럽을 주전장으로 싸우고, 오스만 제국이 동맹국, 일본이 협상국 측에 합류 세계적 규모가 되었다. 총력전이라는 전쟁의 성격과 비행기, 잠수함, 독가스 등 새로운 무기가 출현해 전쟁의 형태를 일변시켰다. 1917년 미국 참전으로 협상측의 승리가 됐지만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 혁명이 발발, 소련-러시아 노동자 정권이 출현해 각지의 민족운동도 격화했다. 이 대전에 의해 독일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러시아 제국·오스만 제국 등은 소멸했다. 전후 파리강화회의의 결과, 1919년에 베르사유조약이 체결되어 국제연맹이 발족해 집단안보를 모색하게 되었지만, 대립의 뿌리를 남기기 때문에, 20년 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다.

 

제1차-세계대전-당시-지도

1. 제국주의 간의 집단적 자위권 사상

발칸 반도에서는 러시아의 남하 정책 과 오스트리아에 의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합병에 의한 대립이 발칸 문제 로 심각화되고 있었다. 당시에는 제국주의국이 군사동맹을 맺고 균형을 잡음으로써 억지된다는 비스마르크 외교 이후의 집단적 자위권을 근거로 한 국제이념이 통용되고 있어 세계전쟁은 회피 또는 억제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는 1914년 6월 28일 , 사라이예보의 일발의 총탄으로 허물어졌다.

 

2. 전화 확대와 총력전화

1914년 7월 28일 ,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하면서 독일·오스트리아의 동맹국 측, 러시아·프랑스·영국의 협상국 측과의 세계 전쟁으로 확대했다. 독일은 8월 1일 러시아, 8월 3일 프랑스 각각 선전 포고, 8월 4일 중립국 벨기에 침공했다. 그것을 받아 이날 영국 이 독일에 선전했다. 이날 미국 은 중립을 선언했다. 전투는 거의 유럽의 독일 동서에서 동부 전선, 서부 전선에서 전개되었지만, 그 밖에 오스만 제국과 불가리아가 동맹국 측에 참전했기 때문에 발칸 반도에서 서아시아에 걸쳐 넓은 범위에 전선이 펼쳐졌다. 또한 독일 세력권이 미치는 아프리카에서의 전투와 중국·남태평양의 독일 권익에 대해 일본이 참전해 공격하는 등 지구적 규모로 전쟁이 퍼졌다. 또한 초기의 예상과는 달리 전쟁은 장기화되어 각국은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 산업 및 경제 부문을 동원하였다. 이로 인해 일부의 전문적인 직업 군인 및 군대만이 싸우는 전쟁이 아니고, 국가의 총력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3. 대량살육병기의 출현

또, 전쟁의 형태는 고도로 기술화되어 비행기, 잠수함, 전차, 독가스 등 새로운 무기를 출현시켰다. 전쟁은 전투원뿐만 아니라 인적, 물적으로 일반 시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전쟁 형태의 변화는 약 백년 전의 나폴레옹 전쟁에 기원이 있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징병 제도, 국민 동원, 과학 기술의 전쟁 이용, 비밀 외교 등의 현대의 전쟁의 요소가 한층 더 선명해졌다.

 

4.미국의 참전과 러시아 혁명

전쟁의 장기화, 전선의 확대, 국민 생활에의 희생이 증대하고 있었다. 1917 년 4월 6일 미국의 참전 과 1917년 11월 7일 러시아 혁명(제2차)은 사상적 전환점이었다. 미국의 참전은 서부 전선에서 독일의 전진을 막고 러시아 혁명은 동부 전선에서 단독 강화의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독일 국내에서도 병사·노동자의 독일 혁명이 일어나 황제 빌헬름 2세가 퇴위해 네덜란드에 망명, 1918년 11월 11일 정전협정이 맺어지면서 전쟁은 종결되었다.

 

5. 집단안보의 이념으로의 전환

다음 해 파리강화회의가 시작되어, 1919년에 베르사유조약으로서 강화조약이 체결되면서 새로운 국제적 평화유지기구로서 국제연맹을 발족시켜, 집단안보를 새로운 국제이념으로 하는 세계로 전환했다. 그러나 베르사유 체제 라고 불리는 전후 체제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갖고, 대전 후의 파시즘의 대두, 아시아의 민족주의의 대두라는 새로운 시련을 견뎌야 하고, 20년 후의 1939년의 제 2 차세대 대전 의 발발을 막을 수 없었다.

 

6. 민족독립의 움직임

한마디로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국가 간 영토적 야심의 모순이 포화점에 이르러 일어났지만, 제국주의의 희생이었던 식민지 피억압민족에게는 자립의 호기가 되었다. 민족자결의 이념하에 유럽의 구제국의 억압을 받고 있던 민족(동유럽 국가 등)은 자립했지만 인도, 중국 등의 민족운동은 더욱 억압이 이어졌다. 중동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붕괴에 승리해 영국·프랑스에 의해 새로운 세력권 분할이 행해져, 한층 더 유태인 국가의 건설이 구체화되었다. 이는 현재에 계속되는 중동 문제의 원인을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