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4월 미국의 참전과 11월 러시아혁명(소련 정권의 성립)에 의해 전기를 맞이해 1918년 3월 독일과 소련 러시아가 단독강화로 합의하여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하였다. 또한 1918년 10월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나 황제가 퇴위해 서부전선에서도 패배하면서 11월 11일 정전이 되었다.
1. 러시아 혁명 및 미국의 참전
신정세의 하나는 러시아 혁명(제2차) 의 발발이다. 2월 혁명(3월 혁명) 으로 차르 정부가 쓰러져 임시 정부와 소비에트의 이중 권력이 되면서 임시 정부는 연합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전쟁 계속을 표명했고 소비에트는 그것에 반대했다. 독일은 비밀리에 스위스에 망명 중인 소련의 지도자 레닌이 독일 영내를 통행할 수 있도록 준비(봉인열차)하고, 그에 의해 4월에 귀국한 레닌은 4월 테제를 제시하고 볼셰비키를 지도 했다. 레닌의 지도 아래 시작된 반전·반임시 정부의 무장봉기에 대해서는 임시 정부는 전선에서 군대를 불러들여 그것을 탄압했다. 7월 권력을 장악한 켈렌스키도 전쟁 속행을 표명했지만 전선 병사 중에는 전쟁기피의 움직임이 강해져 전선에서 이탈하는 병사가 많아졌다. 그런 가운데, 볼셰비키가 무장봉기해 10월 혁명(11월 혁명)이 성공해, 켈렌스키 내각은 붕괴하였다. 11월 8일, 레닌은 평화에 대한 포고를 발표하면서 교전국 모두에게 무병합·무상금에 의한 즉각적인 평화를 제창했다. 연합국으로부터는 모두 무시되었지만, 독일은 호기라고 생각해 소비에트와의 협상에 응해, 1918년 3월, 양자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해 단독 강화를 성립시키고, 소비에트 러시아 는 폴란드의 독립 기타 대폭적인 영토축소를 인정했다.
또 다른 움직임은 미국 참전이다. 미국은 전통적인 고립주의 외교 원칙을 지키고 대전 발발 당초에는 중립을 표명했다. 한편, 영국·프랑스·러시아에는 활발하게 무기나 물자를 원조해, 실질적으로는 연합국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태였다. 다만 국내에 유럽의 전쟁으로 미국의 청년의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강하고, 윌슨 대통령도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1915년 5월 루시타니아호 사건을 계기로 독일의 잠수함을 사용한 무차별 공격에 비난이 강해졌다. 그 후에도 점차 참전의 목소리가 강해져 1917년 2월 독일이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선언한 것을 기반으로 윌슨 대통령은 1917년 4월 의회의 결의를 얻어 미국은 참전을 결정했다. 이후 미국군이 유럽 전선에 파견됨에 따라 전국은 결정적으로 연합군 유리하게 전환했다. 또 윌슨 대통령은 1917년 11월 러시아 10월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이 '평화에 대한 포고'를 발표하면서 그에 맞서 전쟁 목적의 명확화와 전후처리의 원칙을 보여줄 필요를 느끼고 이후 1918년 1월 8일에 14조를 발표했다.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소비에트 정권의 성립은 자본주의 제국에 있어서 위협이며, 또 그 전쟁으로부터의 이탈은 특히 서부 전선에서 독일과 싸우고 있는 프랑스·영국에 있어서 큰 상처였다. 연합국은 러시아 혁명을 간섭하고자 계획하였고 1918년 3월에는 영국, 프랑스, 미국 삼국군이 물만스크에 상륙, 반혁명 정권을 지원하는 대소 간섭 전쟁 을 개시했다 . 4월에는 일본군은 단독으로 시베리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에 상륙했다. 5월에는 러시아령내에 포로가 되고 있던 체코 슬로바키아 군단이 시베리아 경유로 서부 전선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볼셰비키와 충돌한 것을 받아, 그 구원을 구실로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은 공동으로 1918 년 8 달에 시베리아 출병을 밟았다.
2. 전쟁 종결
독일군은 러시아와의 단독 강화에 의해 동부 전선의 병력을 서부로 돌리려고 했지만, 그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은 채, 1918년 8월 8일, 북프랑스의 아미안 부근에서, 미군이 참가한 연합 군에 의해 격파되어 그것을 계기로 후퇴가 시작되었다. 발칸 방면에서도 불가리아가 9월 말에 정전에 응해 오스트리아군은 사로니카로부터의 연합군의 북상과 이탈리아군의 공세에 대해 전의를 잃고, 오스만 제국군도 영국의 팔레스타인 진출과 아랍의 반란으로 고통받는다.
1918년 11월 3일 독일에서 무모한 출격 명령을 거부한 해군 병사가 킬 군항의 수병 반란을 일으켜, 그것이 계기로 각지에서 병사·노동자가 봉기하는 독일 혁명이 발발 해, 황제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에 망명하면서 제정이 붕괴되었다. 독일 공화국의 임시정부의 권력을 장악한 사회민주당 에이버트는 1918년 11월 11일 프랑스 컴피에뉴 숲에서 연합국과 휴전협정을 맺어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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